[여순사건 특별기획 증인] #1 김양기 인터뷰
- 날짜
- 2021.12.06 11:22
- 조회수
- 607
- 등록자
- 윤성현
0:02
여수10.19 특별법 제정 촉구 특별기획 증인 여수mbc
0:08
첫번째 유족 김양기 1950년 9월 28일생 여수국민보도연맹 애기섬 희생자 아들
0:13
Q)아버지는 어떤분이셨어요?
아버지는 원래 제 아버지는 좀 그시절 같으면 좀 인텔리 였다고 봐요. 일본동경에서 동경철도국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0:32
해방된 무렵에. 해방되기 전에 한국을, 조부님이 나오라고 더 거기있으면 안된다고 나오라고 불러서 한국에 나왔는데,
0:46
(그게 몇년도였어요?) 그게 45년도. 나온게
0:53
그러다가 해방이 됐어요. 그러니까 이번에 국민학교 교편을 잡았어요 그러니까 여순사건이 발발할 당시에 아버지는 여수초등학교 여수서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어요.
1:20
김양기씨의 아버지는 좌익운동혐의로 8개월을 복역했다. 출소 이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던 김양기씨의 아버지는 김씨가 태어나기 전, 여수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1:32
6.25가 발발하자 이승만정권이 보도연맹에 가입돼 있는 사람들을 소집해서 애기섬 앞바다에 가서...
1:43
(보도연맹사건때 돌아가셨구나...)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보도연맹에 가입을 하도록 했으니까, 정부에서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특혜가 있는 줄 알고 다들 그랬을거 아니야?
2:20
그시절에는 빨갱이라고 그러면 손가락질만 해도 거기서 즉결처분하는 시절아니야 8개월 복역했다고 하면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들어 나는
2:44
그렇잖아요 조금 그게 진짜 정말로 가담한 사람들은 중형을 받았거든. 무기, 사형, 15년.. 8개월 살았다면 그거는 그주위에서 구경했던 사람밖에 안된다고 나는 판단돼요. 그거는 내 추정이지만..
3:14
Q)유년시절은 어떠셨어요?
(여수)돌산이 외갓집이었는데, 외갓집에서 아홉살때까지 외갓집에서 살다가 어머니가 재가를 했어요. 재혼을 했고 그러다보니까 외갓집에서 살수도 없잖아 그래서 본가로 오게 된거예요 친할머니,
3:41
거기에 할머니가 살아계셨고 할아버지는 그무렵에는 돌아가셨고 우리 할머니는 화병으로 돌아가셨어. 항상 '휴유.. 휴유..' 그생떼같은 아들이 느닷없이 죽었는데, 죽임을 당했는데.. 화병 안들사람이, 할머니가 어디있겠어,부모가.
4:17
학교도 야간중학교 다니고, 고등학교도 겨우겨우 졸업을 제대로 못했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고 그러다 군대를 가고
4:36
이제 일본에 숙부들이 세분이 살고 계셨기때문에 그 숙부들이 나오셔서 한국으로 몇 십년만에 나오셨어. 만나서 일본으로 한번 오라고 초청을 해주셔서 내가 일본으로 가게됐던 거지.
5:04
(야간고등학교 졸업하신 후에 몇년도에 건너가셨어요?)내가 24살때 군대갔다와서
5:17
김양기씨는 일본유학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 회고한다.
5:18
여기는 친적이 없어. 형제간도 없고 나를 누가 보살펴줄만한 사람들이 없어요. 일본에는 작은 아버지들이 세분이나 있었고, 사촌들도 있고 거기가 도리어 고향같은 기분이었어.
5:40
그시절에는 어렸을때는 정을.. 뭐라고 하나 작은 아버지들은 내 혈육의 정이랄까 그런것을 일본에서 느꼈지. 여기서는 항상 고아처럼 남들한테 천대받고 그러고 살았어요. (처음으로 가족이라고 느끼셨겠어요) 그런 가족애를 거기서 느낀거죠 나는 인생이 좀 기구해
6:20
Q) 간첩혐의로 잡혀가셨죠? 기억하세요 혹시 몇년도에..
6:23
86년도 (몇 월 며칠인지 기억나세요?) 2월 21일
6:39
(어떤상황에서 처음에 들으셨어요?) 내가 그때 서울에, 그당시에 21일이면 구정을 쇠고 한 보름정도나 됐을까? 구정 한 열흘정도 조금 더 지났을까 그 무렵이예요. 그무렵에 일본의 숙부중에 둘째 숙부가 그때 몸이 안좋아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반신불구가 되어있어.
7:11
우리나라말로 중풍. 그래서 한국에 나와서 우리집에 와서 침이라도 맞아보겠다고 그래서 구정때 와서 한 20일 우리집에서 지내다가 갈려고.. 숙부가 출국하신다고 올라오신다고 그래서 그러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만나자 그러고 만나러 나갔는데 숙부가 안와 그리고 다른사람이 이상하게 왔어.
7:51
와서 숙부가 비행장에서 쓰러져서 광주대학병원으로 지금 가셨다고. 빨리 광주로 내려가자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정신이 팍 나가버렸지 큰일났다. 이거 보통이 아니구나 더구나 중풍으로 쓰러졌던 환자인데 일본의 가족들한테 어떻게 이야기를 설명을 해야할까 하고 온갖머리가..
8:30
허겁지겁 그사람 따라서 광주로 간거야 그랬더니 광주가서 택시타라 그러고 택시를 탔는데 머리를 뒷좌석에 머리를 탁. 아무것도 못보게 밖을 못보게 처박더라고 (같이갔던 사람이?) 그러고 가서 내린 곳이 505보안대야.
9:02
(왔던 사람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세요?) 아유 나지 아주 몸이 건장하고 거기서 가니까 벌써 딱 기다리고 있어. 그사람들이. 군인들이
9:20
"아 이놈이 김양기야?" 그러면서 양쪽으로 탁 낚아채더니 지하실로 끌고들어가 그러고 옷을 싹 벗겨 그러고 군복으로 딱 갈아입히더라고
9:36
광주 505보안대에서 김양기씨는 43일동안 고문을 받았다.
9:41
그날 저녁부터 잠을 안재우는거야 지켜서서. 앉혀놓고 그잠을 한 5일이나 안잤을까? 4일을 안잤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안자니까 환각이 보이더라. 이벽이 막 움직여 앞에있는 책상이 움직이고 그러다 정신을 잃어버렸어.
10:19
(안재우면서 뭘 물어보고 이랬던거예요?) 그러지 뭘쓰라그러고( 뭘쓰라그래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것 친구, 친적, 동창, 나와 관계된 사람 전부 다쓰라고그래.. 그러면서 잠을 안재우는거야 옆에서 딱 지키고 앉아서(진짜 힘드셨겠네요) 그래서 정신을 잃어버렸는데 그다음날 부터는 어제 저녁에 네가 그랬잖아
11:01
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어제 내가 그런이야기를.. 가서 조총련을 만났고.. 그사람한테 교육을 받고.. 자기들이 가르쳐줘
11:24
그것이 43일동안이야. 물고문도, 고문도 뭐 몽둥이 두드려 패고, 볼펜같은거 이렇게 엮어서 꺾고 이런것은 보통이고 일상적인 고문이야 이건 보통이고 그런고문은 전기고문만 하면 큰 고통을 잘 몰라 물을 뿌려야해.
12:01
몸에 물이 축축하게 젖어서 있어야 전기를 돌리면 팍팍팍 하고 전기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막 벌떡벌떡 일어나 그것을 얼마나 당했는지 몰라. 그러니까 걔들이 한 그런것은 통증이고 이런것을 잘 못느끼겠더라고 신경이 죽어버리니까. 감각이
12:38
Q)왜 간첩이라고 하던가요?
아버지가 반란사건에 연루됐다. 그거는 보안대 지하실에서 수사관들이 나를 고문할때 한 이야기야.
12:57
그때서야 아 그랬었구나. 그러니까 내 공소장이 공소장 모두진술에 걔들이 써놓은 모두진술에 피고인은 본적지에서 발생한 여순사건에 가담타가 검거되어 처형당한 망부 김 누구의 유복자로 태어나서.. 이게 모두 진술이었어. 공소장의..
13:38
나도 처음에는 아버지가 그런 여순사건에 연루됐다 이렇게 한 사실을 모르고 컸어요.
13:50
Q)해명할 기회가 없으셨어요?
광주지검에 검찰청에 갔을 때 검사한테 전부 '너희들, 내가 검사한테 가면 검사한테 너희들이 나한테 고문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 전부 이야기를 하겠다. 폭로하겠다'했지 어리석게도 그 검사도 똑같은 패거리인줄 모르고
14:21
정의가 어딨어. 정의가.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나는 이런사실이 없습니다. 저사람들이 나를 그동안 물고문하고, 전기고문하고 몽둥이질하고
14:38
이런저런 고문을 하면서 이것을 만들어 놓은것이지 거기서 불러놓은 대로 나는 받아썼다. 나는 한사실이 없다. 검사가 뭐라고 하는줄 알아?
14:50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서 입에 게거품 물면서 "이자식아, 네가 부인을 하려면 보안대에서 부인하지 여기와서 부인하면 나보고 어쩌란말이야!" 슬리퍼를 벗어서 뺨을 치고
15:15
하늘이 무너진거야. 하늘이 오로지 하나,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런 용기를 내서 죽을 힘을 내서 그렇게 했는데, 그런.. 검사가 그렇게 해버리니까 나는 말을 할수가 없어. 그때부터. 그때부터
15:46
진술이라는것은 없었고 한쪽에가서 앉았고 그 검사 입회 서기가 타자쳐서, 그날 한 열시쯤 갔는데 한 열두시간 조서 받는다고 그걸 한 열두시간 한 모양이네 내가 교도소에 들어갔을때는 밤 열한시였으니까.
16:20
나중에 자기들이 내손이렇게 잡고 지장을 요렇게.. 종이를 요리. 한사람은 이렇게 내 팔 잡고
16:48
(그렇게 부인도 못하고 들어가셨네요..) 그 재판 받으면서도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어 내가 재판을 하면서도 내가 인정을 한것은 한건이 없어 모두 자기들이 만든 범죄행위야 아마 그런 공안사건에 그렇게 한 사건이 없을거야. 그런데도 소용없어 그래도 유죄가 돼
17:21
증인이 교도관이 나왔어. 검사가 때리는걸 봤습니다. 발로차는것을 봤습니다. 사형시킨다고 했습니다. 증언해도 소용이 없어요 재판부를 싹 바꿔버려 판사들을 그다음 재판 기일에 나가니까 판사들이 싹 바꿔지고 없어
17:50
그래서 재판이고 뭐고 없이 결심, 해가지고 이름도 안잊어버리네. 정광일이라고 부장판사 정광일.
18:06
1986년 투옥된 김양기씨는 7년형을 받고 5년이 지나 1991년 출소했다
18:14
Q)출소이후에는 어떻게 사셨어요?
간첩죄로 징역을 살고 나온사람을 누가 취직을 시켜줄거야. 내가하던 직업은 이미 공중에 분해되어 버렸고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노동일을 하려고 해도 경찰들이 찾아다니는것때문에 그것도 못해
18:44
하다못해 친구들 집이나 아는 지인들집에 내가 들렀다 경찰이 와서 물어보더라는거야 양기 뭐하러왔더냐? 밤1시, 12시, 1시 그때도 전화가오고. 그때만해도 우리 아이들이 전화만 왔다하면 시퍼렇게 질려가지고 아빠또 잡혀가?
19:12
기가막힐 노릇아니야. 이거 그러다 보니까 사회에 대한 분노가 왜내가 이런 고통을 겪고 살아야 하는가. 원망과 분노. 그런것들이 한이 가슴에 쌓여서 그러다가 이밭에 와서 집사람이, 우리밭이 있으니 그밭으로 한번 갑시다
19:49
여기와서 봄에 콩을 심더라고. 그러니까 며칠 후에 오니까 콩이 그콩이 머리를 들고 솟아나와. 그게 그렇게 신기해 그러니까 그 콩이 잎이되는거야 거기에 싹 나는것을 보고 그런것에 빠져서, 그런것에 마음을 주고..
20:35
여기오면 pd님이 보시다시피 누가 나를 간섭할 사람도 없고, 흉 볼 사람도 없고 나혼자서 여기서 그냥 시간가는줄 모르게.. 만약에 그렇지 않았으면 폐인이 내가 되었거나 이미 죽었을거야 그울분 달랜다고 술이나 마셨을 거고. 술안마셨겠어요? 마시지..
21:13
김양기씨는 23년을 싸운 끝에 지난 2009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심 재판부는 "국가의 존립 근거인 국민에 대하여 그 신체의 자유를 아무런 근거없이 속박하였고, 최후의 인권 수호기관인 법원은 눈과 귀를 막은 채 공허한 증거들이 그려낸 허상만을 바라보았다
21:23
엄혹한 시대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피고인의 인권이 침해된 정도가 너무나도 중대하다" 고 판시했다. '김양기 간첩조작사건'은 군부정권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21:39
승소한 후에는 나처럼 이렇게 억울하게 간첩으로 조작된 선생님들 찾아다니면서 재심하라고 쫓아다니고, 설득하고 그런 일에 몇년을 그러고 다녔어요.
22:00
(만나보니까 주로 어떤분들, 선생님처럼 여순사건에 관련된 분들인가요?) 아니예요 그런사람은 나혼자고 납북어부들이 많고, 고기잡으러 갔다가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북한에 납북됐다가 넘어온 사람들 그런사람들 있고, 또 재일교포들, 일본이 고향이라고 오면 김포에서 딱 잡아서 데리고 가서 간첩만들어 버리고
22:43
일본 간첩단 사건, 이런것 전부 무죄 받았잖아요 지금 현재 내가 할때만해도, 내가 법정싸움하고 재심싸움할 때만해도 그런 사람들 밖에 나오지 않았어 믿지를 않고.
23:09
(몇년동안 그러셨으면 일상생활, 일하시는..) 일도 못하지 군산에 재판이 있으면 피해자들 가족들 만나러 가서 위로해주고 간첩사건이라고 하는데 누가 방청객이 나와서
23:30
그사람들 위로해줄 사람이 누가있겠어 힘내라고 여기서부터 거기 쫓아가고, 부산가고, 서울가고 우리집에 고속버스표가 이렇게 있었어 (선생님 마음에 응어리진것때문에..) 그렇죠 그런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면 안되잖아
24:03
Q)아직도 한이 남으셨죠?
그 고문을 하고 사건을 조작하고 했던 그런 사람들은 훈장을 받고 20년, 30년 동안 국가의 혜택을 다 받으면서 살아 그러면 그 사람들 그대로 용서를 해야하는가? 그 훈장 받은거 다 압수해야 하고, 취소해야하고
24:32
그동안 받았던거 구상권 청구하고 전부다 물어내게 해야하는거 아니야 그렇잖아요 걔들이 그 시절만 해도 전두환이 간첩잡아라, 간첩잡아라 그랬거든 그래 놓으니까 간첩으로 만든거야 그러면 상금주고, 표창장 받고, 훈장받고
24:56
이제 한 오십몇명인가, 이십몇명인가 밖에 회수를 못했어요 훈장받은 사람 것은 전부 회수해야하는것 아닌냐 판결이 이렇게 나고, 이렇게 됐으면 그들이 왜 지금도 국가 특혜를 받고 살아야 하냐. 그런문제죠. (그래야 마음이 풀리시는.. )(마음같으면 똑같이..) 나는 고문좀 해보고 싶어. 그사람들 나한테 했던것처럼..
25:38
Q)고문 후유증 아직 있으시죠?
저녁에는 잠을 못자지만, 남보기에는 싱싱한것 같이 보여 그런데 몸에는 골병이 들어가고 있어요 비가오면 이런곳은 아리고 그런것은 아프다고 할수가 없죠
25:57
췌장도 들어내고 없죠. 나는 쓸개빠진 놈이야 그렇게 웃고살아. 쓸개가 없어서..
26:13
Q)앞으로 소원이 있다면?
여순사건이 옛날 과거의 사건이 아니예요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예요 그렇잖아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니까 희생자가 생기니까. 내가 왜 고문을 당하고 여순사건 특별법이 이번에는 틀림없이 통과가 되어서 그분들의 원혼을 좀 달래주고, 추모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으면 또, 명예회복을 시켜주었으면..
26:54
그것은 국가적으로 우리가 당한 유족끼리 할것이 아니라 국가가 저지른 죄니까 국가 범죄니까 국가에서 그 사죄를 해야한다고 봐요 그래서 그분들의 그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늦었지만 남아있는 우리,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렇게 되기를 저는 소원합니다.
27:32
제 21대 국회에서는 여순 10.19 특별법이 제정되길 소망합니다
여수10.19 특별법제정촉구 특별기획 증인 여수MBC
(본 영상은 마포꽃점 폰트로 제작되었습니다.)
link|https://www.youtube.com/watch?v=O0xciSLGPSQ&list=PLHEqzPr4LKU3sthgDAksOCciUJMUQwxB_&index=46|[증인 풀버전] #1 김양기 인터뷰 |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촉구 특별기획||https://i.ytimg.com/vi/O0xciSLGPSQ/maxresdefault.jpg|
여수10.19 특별법 제정 촉구 특별기획 증인 여수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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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유족 김양기 1950년 9월 28일생 여수국민보도연맹 애기섬 희생자 아들
0:13
Q)아버지는 어떤분이셨어요?
아버지는 원래 제 아버지는 좀 그시절 같으면 좀 인텔리 였다고 봐요. 일본동경에서 동경철도국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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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무렵에. 해방되기 전에 한국을, 조부님이 나오라고 더 거기있으면 안된다고 나오라고 불러서 한국에 나왔는데,
0:46
(그게 몇년도였어요?) 그게 45년도. 나온게
0:53
그러다가 해방이 됐어요. 그러니까 이번에 국민학교 교편을 잡았어요 그러니까 여순사건이 발발할 당시에 아버지는 여수초등학교 여수서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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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기씨의 아버지는 좌익운동혐의로 8개월을 복역했다. 출소 이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던 김양기씨의 아버지는 김씨가 태어나기 전, 여수국민보도연맹 학살 사건으로 희생되었다.
1:32
6.25가 발발하자 이승만정권이 보도연맹에 가입돼 있는 사람들을 소집해서 애기섬 앞바다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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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사건때 돌아가셨구나...)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보도연맹에 가입을 하도록 했으니까, 정부에서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특혜가 있는 줄 알고 다들 그랬을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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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에는 빨갱이라고 그러면 손가락질만 해도 거기서 즉결처분하는 시절아니야 8개월 복역했다고 하면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들어 나는
2:44
그렇잖아요 조금 그게 진짜 정말로 가담한 사람들은 중형을 받았거든. 무기, 사형, 15년.. 8개월 살았다면 그거는 그주위에서 구경했던 사람밖에 안된다고 나는 판단돼요. 그거는 내 추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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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유년시절은 어떠셨어요?
(여수)돌산이 외갓집이었는데, 외갓집에서 아홉살때까지 외갓집에서 살다가 어머니가 재가를 했어요. 재혼을 했고 그러다보니까 외갓집에서 살수도 없잖아 그래서 본가로 오게 된거예요 친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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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할머니가 살아계셨고 할아버지는 그무렵에는 돌아가셨고 우리 할머니는 화병으로 돌아가셨어. 항상 '휴유.. 휴유..' 그생떼같은 아들이 느닷없이 죽었는데, 죽임을 당했는데.. 화병 안들사람이, 할머니가 어디있겠어,부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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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야간중학교 다니고, 고등학교도 겨우겨우 졸업을 제대로 못했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고 그러다 군대를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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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본에 숙부들이 세분이 살고 계셨기때문에 그 숙부들이 나오셔서 한국으로 몇 십년만에 나오셨어. 만나서 일본으로 한번 오라고 초청을 해주셔서 내가 일본으로 가게됐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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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고등학교 졸업하신 후에 몇년도에 건너가셨어요?)내가 24살때 군대갔다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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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기씨는 일본유학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 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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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친적이 없어. 형제간도 없고 나를 누가 보살펴줄만한 사람들이 없어요. 일본에는 작은 아버지들이 세분이나 있었고, 사촌들도 있고 거기가 도리어 고향같은 기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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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시절에는 어렸을때는 정을.. 뭐라고 하나 작은 아버지들은 내 혈육의 정이랄까 그런것을 일본에서 느꼈지. 여기서는 항상 고아처럼 남들한테 천대받고 그러고 살았어요. (처음으로 가족이라고 느끼셨겠어요) 그런 가족애를 거기서 느낀거죠 나는 인생이 좀 기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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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간첩혐의로 잡혀가셨죠? 기억하세요 혹시 몇년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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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도 (몇 월 며칠인지 기억나세요?)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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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상황에서 처음에 들으셨어요?) 내가 그때 서울에, 그당시에 21일이면 구정을 쇠고 한 보름정도나 됐을까? 구정 한 열흘정도 조금 더 지났을까 그 무렵이예요. 그무렵에 일본의 숙부중에 둘째 숙부가 그때 몸이 안좋아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반신불구가 되어있어.
7:11
우리나라말로 중풍. 그래서 한국에 나와서 우리집에 와서 침이라도 맞아보겠다고 그래서 구정때 와서 한 20일 우리집에서 지내다가 갈려고.. 숙부가 출국하신다고 올라오신다고 그래서 그러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만나자 그러고 만나러 나갔는데 숙부가 안와 그리고 다른사람이 이상하게 왔어.
7:51
와서 숙부가 비행장에서 쓰러져서 광주대학병원으로 지금 가셨다고. 빨리 광주로 내려가자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정신이 팍 나가버렸지 큰일났다. 이거 보통이 아니구나 더구나 중풍으로 쓰러졌던 환자인데 일본의 가족들한테 어떻게 이야기를 설명을 해야할까 하고 온갖머리가..
8:30
허겁지겁 그사람 따라서 광주로 간거야 그랬더니 광주가서 택시타라 그러고 택시를 탔는데 머리를 뒷좌석에 머리를 탁. 아무것도 못보게 밖을 못보게 처박더라고 (같이갔던 사람이?) 그러고 가서 내린 곳이 505보안대야.
9:02
(왔던 사람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세요?) 아유 나지 아주 몸이 건장하고 거기서 가니까 벌써 딱 기다리고 있어. 그사람들이. 군인들이
9:20
"아 이놈이 김양기야?" 그러면서 양쪽으로 탁 낚아채더니 지하실로 끌고들어가 그러고 옷을 싹 벗겨 그러고 군복으로 딱 갈아입히더라고
9:36
광주 505보안대에서 김양기씨는 43일동안 고문을 받았다.
9:41
그날 저녁부터 잠을 안재우는거야 지켜서서. 앉혀놓고 그잠을 한 5일이나 안잤을까? 4일을 안잤을까 그렇게 오랫동안 안자니까 환각이 보이더라. 이벽이 막 움직여 앞에있는 책상이 움직이고 그러다 정신을 잃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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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우면서 뭘 물어보고 이랬던거예요?) 그러지 뭘쓰라그러고( 뭘쓰라그래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것 친구, 친적, 동창, 나와 관계된 사람 전부 다쓰라고그래.. 그러면서 잠을 안재우는거야 옆에서 딱 지키고 앉아서(진짜 힘드셨겠네요) 그래서 정신을 잃어버렸는데 그다음날 부터는 어제 저녁에 네가 그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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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어제 내가 그런이야기를.. 가서 조총련을 만났고.. 그사람한테 교육을 받고.. 자기들이 가르쳐줘
11:24
그것이 43일동안이야. 물고문도, 고문도 뭐 몽둥이 두드려 패고, 볼펜같은거 이렇게 엮어서 꺾고 이런것은 보통이고 일상적인 고문이야 이건 보통이고 그런고문은 전기고문만 하면 큰 고통을 잘 몰라 물을 뿌려야해.
12:01
몸에 물이 축축하게 젖어서 있어야 전기를 돌리면 팍팍팍 하고 전기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막 벌떡벌떡 일어나 그것을 얼마나 당했는지 몰라. 그러니까 걔들이 한 그런것은 통증이고 이런것을 잘 못느끼겠더라고 신경이 죽어버리니까. 감각이
12:38
Q)왜 간첩이라고 하던가요?
아버지가 반란사건에 연루됐다. 그거는 보안대 지하실에서 수사관들이 나를 고문할때 한 이야기야.
12:57
그때서야 아 그랬었구나. 그러니까 내 공소장이 공소장 모두진술에 걔들이 써놓은 모두진술에 피고인은 본적지에서 발생한 여순사건에 가담타가 검거되어 처형당한 망부 김 누구의 유복자로 태어나서.. 이게 모두 진술이었어. 공소장의..
13:38
나도 처음에는 아버지가 그런 여순사건에 연루됐다 이렇게 한 사실을 모르고 컸어요.
13:50
Q)해명할 기회가 없으셨어요?
광주지검에 검찰청에 갔을 때 검사한테 전부 '너희들, 내가 검사한테 가면 검사한테 너희들이 나한테 고문하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 전부 이야기를 하겠다. 폭로하겠다'했지 어리석게도 그 검사도 똑같은 패거리인줄 모르고
14:21
정의가 어딨어. 정의가.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나는 이런사실이 없습니다. 저사람들이 나를 그동안 물고문하고, 전기고문하고 몽둥이질하고
14:38
이런저런 고문을 하면서 이것을 만들어 놓은것이지 거기서 불러놓은 대로 나는 받아썼다. 나는 한사실이 없다. 검사가 뭐라고 하는줄 알아?
14:50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서 입에 게거품 물면서 "이자식아, 네가 부인을 하려면 보안대에서 부인하지 여기와서 부인하면 나보고 어쩌란말이야!" 슬리퍼를 벗어서 뺨을 치고
15:15
하늘이 무너진거야. 하늘이 오로지 하나,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런 용기를 내서 죽을 힘을 내서 그렇게 했는데, 그런.. 검사가 그렇게 해버리니까 나는 말을 할수가 없어. 그때부터. 그때부터
15:46
진술이라는것은 없었고 한쪽에가서 앉았고 그 검사 입회 서기가 타자쳐서, 그날 한 열시쯤 갔는데 한 열두시간 조서 받는다고 그걸 한 열두시간 한 모양이네 내가 교도소에 들어갔을때는 밤 열한시였으니까.
16:20
나중에 자기들이 내손이렇게 잡고 지장을 요렇게.. 종이를 요리. 한사람은 이렇게 내 팔 잡고
16:48
(그렇게 부인도 못하고 들어가셨네요..) 그 재판 받으면서도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어 내가 재판을 하면서도 내가 인정을 한것은 한건이 없어 모두 자기들이 만든 범죄행위야 아마 그런 공안사건에 그렇게 한 사건이 없을거야. 그런데도 소용없어 그래도 유죄가 돼
17:21
증인이 교도관이 나왔어. 검사가 때리는걸 봤습니다. 발로차는것을 봤습니다. 사형시킨다고 했습니다. 증언해도 소용이 없어요 재판부를 싹 바꿔버려 판사들을 그다음 재판 기일에 나가니까 판사들이 싹 바꿔지고 없어
17:50
그래서 재판이고 뭐고 없이 결심, 해가지고 이름도 안잊어버리네. 정광일이라고 부장판사 정광일.
18:06
1986년 투옥된 김양기씨는 7년형을 받고 5년이 지나 1991년 출소했다
18:14
Q)출소이후에는 어떻게 사셨어요?
간첩죄로 징역을 살고 나온사람을 누가 취직을 시켜줄거야. 내가하던 직업은 이미 공중에 분해되어 버렸고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노동일을 하려고 해도 경찰들이 찾아다니는것때문에 그것도 못해
18:44
하다못해 친구들 집이나 아는 지인들집에 내가 들렀다 경찰이 와서 물어보더라는거야 양기 뭐하러왔더냐? 밤1시, 12시, 1시 그때도 전화가오고. 그때만해도 우리 아이들이 전화만 왔다하면 시퍼렇게 질려가지고 아빠또 잡혀가?
19:12
기가막힐 노릇아니야. 이거 그러다 보니까 사회에 대한 분노가 왜내가 이런 고통을 겪고 살아야 하는가. 원망과 분노. 그런것들이 한이 가슴에 쌓여서 그러다가 이밭에 와서 집사람이, 우리밭이 있으니 그밭으로 한번 갑시다
19:49
여기와서 봄에 콩을 심더라고. 그러니까 며칠 후에 오니까 콩이 그콩이 머리를 들고 솟아나와. 그게 그렇게 신기해 그러니까 그 콩이 잎이되는거야 거기에 싹 나는것을 보고 그런것에 빠져서, 그런것에 마음을 주고..
20:35
여기오면 pd님이 보시다시피 누가 나를 간섭할 사람도 없고, 흉 볼 사람도 없고 나혼자서 여기서 그냥 시간가는줄 모르게.. 만약에 그렇지 않았으면 폐인이 내가 되었거나 이미 죽었을거야 그울분 달랜다고 술이나 마셨을 거고. 술안마셨겠어요? 마시지..
21:13
김양기씨는 23년을 싸운 끝에 지난 2009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심 재판부는 "국가의 존립 근거인 국민에 대하여 그 신체의 자유를 아무런 근거없이 속박하였고, 최후의 인권 수호기관인 법원은 눈과 귀를 막은 채 공허한 증거들이 그려낸 허상만을 바라보았다
21:23
엄혹한 시대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피고인의 인권이 침해된 정도가 너무나도 중대하다" 고 판시했다. '김양기 간첩조작사건'은 군부정권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21:39
승소한 후에는 나처럼 이렇게 억울하게 간첩으로 조작된 선생님들 찾아다니면서 재심하라고 쫓아다니고, 설득하고 그런 일에 몇년을 그러고 다녔어요.
22:00
(만나보니까 주로 어떤분들, 선생님처럼 여순사건에 관련된 분들인가요?) 아니예요 그런사람은 나혼자고 납북어부들이 많고, 고기잡으러 갔다가 자신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북한에 납북됐다가 넘어온 사람들 그런사람들 있고, 또 재일교포들, 일본이 고향이라고 오면 김포에서 딱 잡아서 데리고 가서 간첩만들어 버리고
22:43
일본 간첩단 사건, 이런것 전부 무죄 받았잖아요 지금 현재 내가 할때만해도, 내가 법정싸움하고 재심싸움할 때만해도 그런 사람들 밖에 나오지 않았어 믿지를 않고.
23:09
(몇년동안 그러셨으면 일상생활, 일하시는..) 일도 못하지 군산에 재판이 있으면 피해자들 가족들 만나러 가서 위로해주고 간첩사건이라고 하는데 누가 방청객이 나와서
23:30
그사람들 위로해줄 사람이 누가있겠어 힘내라고 여기서부터 거기 쫓아가고, 부산가고, 서울가고 우리집에 고속버스표가 이렇게 있었어 (선생님 마음에 응어리진것때문에..) 그렇죠 그런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면 안되잖아
24:03
Q)아직도 한이 남으셨죠?
그 고문을 하고 사건을 조작하고 했던 그런 사람들은 훈장을 받고 20년, 30년 동안 국가의 혜택을 다 받으면서 살아 그러면 그 사람들 그대로 용서를 해야하는가? 그 훈장 받은거 다 압수해야 하고, 취소해야하고
24:32
그동안 받았던거 구상권 청구하고 전부다 물어내게 해야하는거 아니야 그렇잖아요 걔들이 그 시절만 해도 전두환이 간첩잡아라, 간첩잡아라 그랬거든 그래 놓으니까 간첩으로 만든거야 그러면 상금주고, 표창장 받고, 훈장받고
24:56
이제 한 오십몇명인가, 이십몇명인가 밖에 회수를 못했어요 훈장받은 사람 것은 전부 회수해야하는것 아닌냐 판결이 이렇게 나고, 이렇게 됐으면 그들이 왜 지금도 국가 특혜를 받고 살아야 하냐. 그런문제죠. (그래야 마음이 풀리시는.. )(마음같으면 똑같이..) 나는 고문좀 해보고 싶어. 그사람들 나한테 했던것처럼..
25:38
Q)고문 후유증 아직 있으시죠?
저녁에는 잠을 못자지만, 남보기에는 싱싱한것 같이 보여 그런데 몸에는 골병이 들어가고 있어요 비가오면 이런곳은 아리고 그런것은 아프다고 할수가 없죠
25:57
췌장도 들어내고 없죠. 나는 쓸개빠진 놈이야 그렇게 웃고살아. 쓸개가 없어서..
26:13
Q)앞으로 소원이 있다면?
여순사건이 옛날 과거의 사건이 아니예요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예요 그렇잖아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니까 희생자가 생기니까. 내가 왜 고문을 당하고 여순사건 특별법이 이번에는 틀림없이 통과가 되어서 그분들의 원혼을 좀 달래주고, 추모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으면 또, 명예회복을 시켜주었으면..
26:54
그것은 국가적으로 우리가 당한 유족끼리 할것이 아니라 국가가 저지른 죄니까 국가 범죄니까 국가에서 그 사죄를 해야한다고 봐요 그래서 그분들의 그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늦었지만 남아있는 우리,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렇게 되기를 저는 소원합니다.
27:32
제 21대 국회에서는 여순 10.19 특별법이 제정되길 소망합니다
여수10.19 특별법제정촉구 특별기획 증인 여수MBC
(본 영상은 마포꽃점 폰트로 제작되었습니다.)
link|https://www.youtube.com/watch?v=O0xciSLGPSQ&list=PLHEqzPr4LKU3sthgDAksOCciUJMUQwxB_&index=46|[증인 풀버전] #1 김양기 인터뷰 |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촉구 특별기획||https://i.ytimg.com/vi/O0xciSLGPSQ/maxresdefault.jpg|
| 저자명 | 여수mbc |
|---|---|
| 생산연도 | 2020. 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