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이 마을에는 경기도 광주에 살던 광주이씨(廣州李氏) 이동구가 1672년경 일가족을 데리고 이곳에 정착하여온 뒤 옥천조씨(玉川趙氏)등이 계속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은 본시 광주이씨의 집성촌으로서 해방 당시만 하더라도 광주이씨가 40호 기타 성씨가 10여호였지만 현재는 광주이씨가 30호로 줄어들었고 타성 받이는 10여호이다. 그리고 마을이 형성될 당시에는 청송심씨가 살았다는데 지금은 한집도 살고 있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인 할수 없다.
한편 옛날 조선조때에는 지금의 복산1구를 윗조산이라 하고 지금의 풍류마을을 아랫조산이라고 불렸었으나 일제시대에 들어와 조산(造山), 풍류(風流;지금의 복산6구), 대곡(大谷), 마산(馬山), 달천(達川) 등 5개 마을을 한데 묶어 복산리(福山里)로 총칭했었다. 그러나 해방후 한때 조산과 풍류를 합하여 복산1구로 하였다가 1986. 8. 1 풍류만이 따로 떨어져 나와 복산6구가 된 것이다.
지명유래(地名由來)
한편 옛날 조선조때에는 지금의 복산1구를 윗조산이라 하고 지금의 풍류마을을 아랫조산이라고 불렸었으나 일제시대에 들어와 조산(造山), 풍류(風流;지금의 복산6구), 대곡(大谷), 마산(馬山), 달천(達川) 등 5개 마을을 한데 묶어 복산리(福山里)로 총칭했었다. 그러나 해방후 한때 조산과 풍류를 합하여 복산1구로 하였다가 1986. 8. 1 풍류만이 따로 떨어져 나와 복산6구가 된 것이다.